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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정공>건곡선생유사(虔谷先生遺事)
虔谷先生遺事 先生諱瑜字兪玉號虔谷生于麗朝忠穆王二年丙戌登進士文科歷官至中顯大夫典農寺副正入我朝累徵至靈光郡事判漢城府尹皆不就自以前朝之臣義不可仕遯居于淳昌虔之谷末年又移居于順天之富有村謙川上放浪林泉潔身以終其卒即 宣德五年戊申也士林慕其節義以虔谷稱之先生天性至孝弱年遭先夫人艱時當短喪獨食素廬墓以終制及丁外憂將遷先夫人合厝躬自負土以完塋築以盡追慕之誠因侍墓終喪繼夫人憂亦如之於侍墓也每日晨夕哀省風雨不避見者爲之感嘆 世宗朝特命旌之曰孝子前副正趙瑜之閭而不以 本朝職書之盖所以並褒其忠也及計聞命遣禮官葬以一品之禮特賜守塚三戶墓在順天住岩面住岩洞向辛之原其居虔谷也同時處士朴綏 過題幽居曰曾式金鰲山下閭南鄉今聞玉人居虔之古里風猶古忠孝雙全此一廬旌孝碑舊在淳昌古里 崇禎三十四年辛丑移竪于謙川上而閣之又即其遺墟南中多士建祠享之即 肅宗庚子也判中樞申銋書其額家乗 世宗大王旌虔谷趙孝子閭特書前副正三字用成其志 御製詩 聖朝不屈忠臣節小子微衷在述事淵明號猶晋處士子陵官非漢諫議前朝雪月暎金石孝子丹心書庸識先生忠節本於孝事親餘誠殉國志清標伯夷採薇山至行高柴泣血涙先朝好爵不移操君子貞心松栢翠南州古宅考槃處旌孝彝章嘉乃意清芬尚挹百行源美蹟將垂三尺誌新天爵祿示若浼炳日丹忠知不二因其舊啣表其閭特志王章恩禮異之仁之德豈二心惟孝惟忠同一致人間公以故國臣葬亦銘旌副正字孤臣素節石可語也應忠魂欣不寐高風推憶冶隱家注書前啣兩無愧斯人斯孝 表章地石面官啣何以記生前表志沒後願豈曰違之意可遂君親大義視無間臣子彛倫賴不墜移忠 恨未作我臣悵望金鰲興感思 건곡선생휘유유사(虔谷先生諱瑜遺事) 선생의 휘는 유(瑜)요, 자는 유옥(兪玉) 호는 건곡인데, 고려 충목왕(忠穆王) 二年(一三四六) 병술에 태어났다. 진사로 문과(進士文科)에 오르고, 벼슬은 중현대부(中顯大夫) 전농시부정(典農寺副正)에 올랐다. 조선에 들어와서 여러 차례 영광군사(靈光郡事)와 한성부윤(漢城府尹)으로 불렀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스스로 고려의 신하를 자처하여 의리상 벼슬할 수 없다 여겨 순창(淳昌) 건곡(虔谷)에 은거하였다가 말년에 또 순천 부유촌(富有村) 겸천(謙川) 위 로 이거하여 임천(林泉) 사이를 방랑하면서 몸을 깨끗이 지키다 선덕(宣德) 五년(一四 二八) 무신(戊申)에 졸하였는데, 사림(士林)들이 그의 절의를 사모하여 건곡이라 칭하였다. 선생은 천성이 매우 효성스러워 약관(弱冠:二十세 전후)에 선부인(先夫人)의 상을 당하였는데, 이때 모두 상기(喪期)를 단축하였으나, 유독 선생만이 소찬(素饌)을 들면서 여묘(廬墓)살이를 하며, 상을 마쳤다. 또 아버지 상을 당하여 선부인의 묘를 옮겨 합장할 때에는 스스로 흙을 져다가 무덤을 완전하게 다졌는데, 이는 추모의 정이 극진해서였다. 시묘살이를 다하여 상을 마치자 계부인(繼夫人)의 상을 당하여서도 마찬가지로 하였다. 시묘살이를 할 때에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슬피 곡하고 살피었으므로, 비바람 불어 도 피하지 않으매 보는 자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세종(世宗)때 특별히 「효자 전부정 조유의 정려」를 명하여, 조선의 관직을 쓰지 않도록 하였다. 이는 그의 층절을 함께 표창한 것이다. 공의 부음(計音)이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예관(禮官)을 보내 一품(品)의 예로 장례지내고 특별히 무덤을 지키는 집 三호(戶)를 내렸다. 묘소는 순천군 주암면 주암동 향신(向辛) 언덕에 있다. 그가 건곡에 살 때 같은 시대의 처사(處士) 박수(朴綏)가 그 유거(幽居)를 지나면서 이런 시를 지었다. 일찍이 금오산 아래 정려에 절 했네 曾式金烏山下閭 이제 남쪽 고을에서 옥인이 산다는 말 듣네 南鄉今聞玉人居 건곡의 옛 마을 풍속 예와 같으니, 虔之古里風猶古 충효가 겸비한 이 곳 초려이네. 忠孝雙全此一廬 정효비(旌孝碑)는 전에 순창 고리(古里)에 있었는데, 숭정(崇禎) 三十四년(一六六○) 신축(辛丑)에 겸천 위로 옮겨 세우고 비각을 세웠다. 또 그 유허(遺墟)에다 남쪽 고을 선비들이 사당을 세워 제사하니, 바로 숙종(肅宗) 경자년(一七二○)일로 판중추부사 신임(申銋)이 그 비액(碑額)을 썼다. 가승(家乗) 세종대왕이 건곡 효자의 정려를 특별히 「전부정(前副正)」 세 자를 쓰게 하여 그의 뜻을 이루게 하였다. 어제시(御製詩) 성조에서 충신의 절개 꺾지 않으니 聖朝不屈忠臣節 소자의 적은 충정. 일을 기술하네. 小子微衷在述事 도연명은 오히려 진나라 처사로 자처하고 淵明號猶晋處士 엄자릉(嚴子陵)도 한나라 간의 대부 사양했네. 子陵官非漢諫議 전조의 흰 달은 금석에 비추고 前朝雪月暎金石 효자의 붉은 마음 빗돌에 새겼네. 孝子丹心書庸識 선생의 충절은 효도에 근본하고 先生忠節本於孝 부모 섬긴 정성으로 순국의 뜻 두었네. 事親餘誠殉國志 맑은 지조 지닌 백이는 수양산에서 고사리 캐고 淸標伯夷採薇山 지극한 행실 지닌 고시는 피눈물 흘렸다. 至行高柴泣血涙 선조 때의 좋은 벼슬에도 지조 굽히지 않고 先朝好爵不移操 군자의 곧은 마음 송백처럼 푸르르네. 君子貞心松栢翠 남쪽 지방 거처하던 옛 집에 南州古宅考槃處 효자 정려 내린 아름다운 뚯. 旌孝彝章嘉乃意 맑은 향기는 백가지 행실을 끌어당기고 淸芬尚挹百行源 아름다운 행적은 세 자 지석(誌石)에 새겼네. 美蹟將垂三尺誌 새 조정의 벼슬과 녹봉 모욕으로 여겼으니 新天爵祿示若浼 해처럼 밝은 충성 두 마음 몰랐네. 炳日丹忠知不二 그 옛 직함으로 정려를 내렸으니 因其舊啣表其閭 특별히 내린 나라의 은혜 우악하네. 特志王章恩禮異 인과 덕이 어찌 두 가지 마음이랴. 之仁之德豈二心 효와 충은 다 일치한 것 惟孝惟忠同一致 살아서는 고려의 신하요 人間公以故國臣 죽어서의 명정도 부정자였네. 葬亦銘旌副正字 고신의 깨끗한 절개 돌에 새기니 孤臣素節石可語 충성스런 넋 기뻐 잠 못 이루리. 也應忠魂欣不寐 높은 풍성의 야은가를 생각하니 高風推憶冶隱家 주서와 부정 둘 다 부끄럼 없네. 注書前啣兩無愧 이 분의 그 효도를 표장한 마당에 斯人斯孝表章地 빗돌의 관작을 무어라 기록하랴. 石面官啣何以記 생전에 드러낸 뜻 죽어서도 원하리니 生前表志沒後願 어찌 그 뜻을 어길 수 있으랴. 豈曰違之意可遂 임금과 어버이 사이 두지 않음은 君親大義視無間 신하의 떳떳한 도리 떨어뜨리지 않은 것. 臣子彝倫賴不墜 그 충성 옮겨 우리 신하 안 됨 한스러워 移忠恨未作我臣 서럽게 금오산 바라보니 감회 무한하네. 悵望金烏興感思 註:금오산(金烏山):경상북도 선산(善山)에 있는 산. 고려 말의 학자이며 충신인 길재(吉再)가 숨어 지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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